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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영종합사회복지관 장나엘 부장)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는 나이

관리자 | 2021-04-22 | 조회수 : 89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는 나이

 

절영종합사회복지관  장나엘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자신의 편견과 마주 보다>

 

나이의 숫자가 하나하나 올라가고,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뀐다는 것, 은근한 심적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세상 겁 없던 10대 시절,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스무 살이 하루빨리 되길 기대하였다. 바쁜 아르바이트로 제대로 누리지 못한 대학 생활, 취업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압박을 이겨내야 했던 취업준비생 시절, 낮은 연봉과 타지 살이로 저금할 여유도 없고 쉴 틈조차 없던 신입 사회복지사 시절 등 20대의 10년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버렸다. 정말 되고 싶지 않았던 나이 서른의 문턱에 막 들어섰을 때, 지나온 20대의 나날들은 그 어떤 날보다 햇살 쨍쨍한 날이었음을 알았고, 이제 파릇파릇한 청춘은 끝이 났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하지만 또다시 시간이 훌쩍 지나 30대의 끝자락이 오고 나서 뒤돌아본 30대의 10년은 20대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새파란 청춘이었구나 싶다.

 

나이 마흔의 시작, 스스로 많은 나이라 생각하면서도 당당하게 지냈던 30대의 어느 날보다 조금은 위축된 느낌이다. 지금의 자연스러운 나보다 더 어른스럽게, 더 원숙하게 보이게끔 가식적으로 꾸며야 하나? 그간 즐겨왔던 취미생활이 나이에 맞지 않는다고 보일 수 있으니 이제는 그만둬야 하나? 누군가가 비난할 것만 같은 왠지 모를 심리적 위축으로 그간 꾸준히 좋아해 왔던 무언가를 할 때도 자꾸 눈치를 보게 된다. 나이 먹은 거 그게 뭐가 대수라고, ‘내 나이가 어때서를 당당하게 외치기도 했다가, 때로는 어째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행동과 모습을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억울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무엇을 말할지 글의 주제를 찾다가 최근 막 나이 40세가 된 후 느꼈던 고민, 스스로가 가졌던 잘못된 편견에 대해 마주해보기로 하였다. 글로 생각을 정리함으로써 나 스스로 나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한 인생을 살아도 된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이 있는 사람들과 자신과 타인의 나이에 쓸데없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기>

 

내 나이가 벌써 OO인데, 내가 지금 이걸 어떻게 하노?”

 

사회복지사로 현장에 근무하면서 이용자, 주민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이런 말을 듣는다. 자신의 나이가 무엇인가를 새로 시작하는 것에 있어 방해요소가 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이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나이에 대한 편견이 방해요소인 셈이다.

 

하지만 사회복지 전문가라는 우리들 또한 이처럼 나이에 대한 자신만의 편견과 선입견을 품고 주민들을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지역의 주민들은 나이가 많으니까 이런 것은 싫어하실 거야

나이 많은 어르신들은 당연히 못 할 걸?’

 

주민조직화 교육에서 지역주민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잠재역량이 있다고 말한다. 그 무궁무진할 잠재역량을 한 개인의 오만한 생각으로 함부로 성장 가능성을 묵살하고 참여 기회를 강제로 제한할 수는 없다. 만약 그러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사회복지를 실천한 경험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이러한 생각을 바꿔보자.

 

물론 사회복지실천을 하면서 때로는 나이가 큰 장애물로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어떠한 문제 상황에 부딪혔을 때 나이자체가 아닌, 나이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신체 기능, 그리고 나이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심리적 요인 혹은 지역사회의 인식이나 사회적 상황이 진정한 장애물일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수행하고자 할 때 대상 집단의 나이와 관련하여 좁은 시야에서 섣불리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다. 더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그들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실현해나가는 과정에서 장애물이 될 만한 것을 찾아내고 개선하는데 에너지를 써야 할 것이다.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들>

 

얼마 전 2021년도 고졸 검정고시에서 84세의 노인이 7번의 도전 끝에 마침내 합격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고졸 전국 최고령 합격자이다. 학업에 대한 열망으로 노인복지관에서 공부를 시작하였고, 대학 진학을 하는 꿈을 이루고자 중졸 검정고시, 고졸 검정고시까지 긴 도전을 이어왔다고 한다. 이처럼 최고령 도전, 최연소 합격 등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올 때, 마치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동안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는 크고 작은 도전을 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하여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50대 동료 직원,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OTT 서비스 TV 연결까지 해내는 65세의 엄마, 통화 용도로만 활용했던 핸드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즐겨보거나 실시간 ZOOM 회의에 참여하는 70대 어르신 등.

 

내가 속한 복지관에서 여러 해 전부터 지역 어르신을 대상으로 스마트 활용 교육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교육을 희망하는 어르신들은 매년 있었지만, 지역 특성 상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았고, 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교육이 크게 활성화될 정도의 관심은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2020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일상의 많은 것들이 급격하게 달라졌고, 사회복지 실천 또한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에 따라 대면 서비스의 비중을 줄이고 비대면 서비스를 점차 강화해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관 이용자들 또한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비대면 서비스에 익숙해져야 했고, 스마트 활용 역량을 일정 수준으로 갖춰야 더욱 다양하고 원활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고령의 나이와 관계없이 스마트 활용에 익숙해지는 것, 이 또한 그들에게 나이의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이었고, 지금도 그 도전은 한창 진행 중이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나이의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 맞는가?

사실 처음부터 나이의 한계에 대해 정해둔 지침 따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데, 마치 지침이나 규정이 있는 것처럼 타인을 바라보았고, 스스로 만든 한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는 나이>

 

나이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의 변화가 생겼다. 물론 처음부터 난 나이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싶으니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란 마음으로 쓰기 시작한 글이기에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겐 작지만 소중한 변화이다.

 

지금부터 10년이 훌쩍 지나 아무 탈 없이 50대로 무사히 안착하였을 때 뒤돌아본 40대의 10년은 또 얼마나 빛나는 날들일까? 매번 지나온 날들을 아쉬워만 하며, 현재 나이에서 해낼 무한한 가능성과 놀라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인생을 사는 것은 참 허무할 것 같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고 보니 나이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잘못된 잣대를 들이대며 타인을 함부로 헐뜯고 비난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맞설 용기가 생겼다. 그 누구도 타인의 나이에 대해 함부로 한계를 정하고, 그 한계를 넘어선다고 하여 비난할 권리는 없다.

 

한낱 나이로 인해 자신과 남들로부터 주눅을 받을 이유도 없고, 자신과 남들에게 주눅을 줄 필요도 없다. 인생의 지나온 날들은 밝게 빛났던 청춘이었으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은 더 밝게 빛날 수 있는 청춘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충분히 열중할 수 있고, 재미있는 것을 하고 싶을 때 주변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도전할 수 있고, 조건 없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나이.

 

그 무엇도 해낼 수 있는 나이, 바로 오늘 당신의 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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